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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김성근 감독과 임창용 선수

한눈에 보기에도 대물이었다. 사이드 핸드 투수가 147킬로이면 최상이었다. 그런데 선수가 훈련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옆에서 아무리 가르쳐도 그때뿐 돌아서면 늘 놀려고만 들었다. 그래도 기대를 안고 마운드에 올리면 난타당하기 일쑤였다. 기회만 생기면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술 마시고 노느라고 마운드에서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김성근과 임창용은 1년여를 그렇게 도망치면 잡아 오는 세월을 보냈다. 재능은 누구보다 뛰어난데 발휘하 지를 못하니 속이 새카맣게 탔다. 하지만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먹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95년 김성근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2군 감독을 맡았다. 다들 1군 감독이었던 사람이 2군 감독을 어떻게 맡느냐고 들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때를 기다리며 사람을 키우고 싶었다. 그런 김성근 감독을 한눈에 매료시킨 선수가 있었다.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막 입단한 임창용 선수였다. 어깨가 싱싱하고 공이 위력적이었다. 컨트롤만 잡아주고 몇 가지만 익히면 곧 대물이 될 선수였다. 의욕이 넘쳤고 임창용 선수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당시 임창용 선수는 야구에는 뜻이 없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만 몰두했다. 속만 태우던 김성근 감독은 계획을 다시 세웠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게으른 천재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안 되면 버릴 마음까지 먹고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있던 어느 날 툭하면 사라지던 임창용 선수가 또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김성근 감독은 지금이 그때임을 느끼고 3일 후 임창용 선수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자신이 지은 죄가 있어 김성근 감독을 보자 꼬리를 내렸지만, 속으론 또 한바탕 야단맞고 나면 끝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았다.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라 그리고 친구들하고 실컷 놀아라. 너 같은 놈은 필요 없다. 지금까지 다정다감했던 김성근 감독의 불호령에 임창용 선수는 일이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 한마디 툭 던져놓고 사라져 버렸다. 친구도 좋고 술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야구를 가장 좋아했던 임창용 선수는 김성근 감독의 화를 풀기 위해 정말 열심히 훈련을 하였으나 김성근 감독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진짜 큰일 났다 싶었다. 정말 야구를 못 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연습이 끝나자마자 숙소로 찾아갔다.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김성근 감독이 금방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말이다. 임창용 선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감독님 다음부터는 연습에 절대 빠지지 않겠습니다. 모든 걸 다 끊고 야구만 하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막다른 골목이었고 여기서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야구를 정말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했다는 말을 수없이 하며 마냥 꿇어앉아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계속 흐르고 무릎이 아파왔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3시간쯤 흐른뒤 마침내 방문이 열리고 김성근 감독이 모습을 보였다. 들어와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한, 번 더 허튼짓하면 용서 없다. 드디어 스스로 물을 마시게 된 임창용 선수는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선수로 탈바꿈하게 된다. 96년 중간계투로 7승, 97년 14승 26세이브, 98년 8승 34세이브 그리고 한국, 일본, 미국을 두루두루 경험하게 된다, 이십몇 년의 빛나는 젊은 야구선수 시절은 그렇게 한 순간이 그 한 사람의 시작이었다.